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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란 Best보다 Worst를 없게 하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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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시내에서 방나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방파콩 쪽으로 약 20여분을 달리다 보면 BANG BO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BANG BO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BAC 대학 방나 캠퍼스“ 가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ABAC 대학 방나 캠퍼스”정문을 지나서 한참을 가다보면 SUBPHAPRUEK이라는 골프장이 나타납니다. 평상시에는 페어웨이나 그린 상태가 최상급이지만 우기철만 되면 배수가 되지 않아서 참으로 민망한 골프장으로 변신하는 곳으로 유명하지요. 드라이버 티 샷을 한 공이 페어웨이에 콕 박히거나 뒤로 바운드가 되는 상황을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SUBPHAPRUEK 골프장과 더불어 박 프로가 완전 좋아하는 골프장이 한 군데 있는데, 그 골프장이 바로 “ABAC 대학 방나 캠퍼스”들어가는 골목 바로 맞은편의 VINTAGE 골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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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tage 골프장 2번 홀의 전경

 

 

코스 전장거리가 6,952야드로서 전체적으로 해저드가 많고, 그린 사이드 벙커가 대단히 위협적이며, 그린의 빠르기도 많이 빠른,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또한, 판야 인드라 골프장처럼 끼워 넣기를 절대 하지 않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라운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약 문화가 제대로 잡혀 있는 골프장입니다. 골프장의 전체적인 느낌이 대단히 평화롭고, 마치 조용한 공원을 거닐고 있는 듯한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2010년 KLPGA 3관왕(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인 ‘이보미’ 프로가 연초에 2개월 동안 동계 전지훈련을 했던 골프장이기도 합니다.클래식한 클럽 하우스와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경과 너무 나도 평화롭고 한적한 느낌 때문에 한 동안 자주 다녔습니다.

 

 

휴가를 온 친구와 함께 갔던 어느 날,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태국인 할아버지랑 조인을 하게 되어서 함께 라운딩을 했었습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태국인 할아버지였는데 메너가 너무 좋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Vintage 골프장의 회원이신데 혹시 다시 올 일 있으면 함께 라운딩을 했으면 하셨습니다.

 

 

골프를 함께하면서 할아버지께서 멋진 메너 만큼이나 대단한 고수라는 것을 직접 저의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Vintage 골프장으로 출동을 하게 되면 가끔 할아버지께 연락을 해서 함께 라운딩을 했습니다. 고수 할아버지와의 라운딩 중 여러 이야기 꺼리가 있지만 제가 겪었던 여러 경험 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친구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며칠 후, 할아버지로부터 라운딩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전에 없던 저녁 식사 내기 골프를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내기골프에 적지 않게 당황이 되었지만 둘이 먹는 저녁 식사비가 얼마나 할 것이며, 이미 지난 번 동반 라운딩 경험으로 볼 때 제가 손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기 골프는 시작되었습니다.

 

태국인 할아버지 : " 프로 박! 먼저 치게.....!"

박 프로: 아닙니다. 먼저 티업 하시죠! (전 속으로 이렇게 말했죠. '이번 홀 오너가 오늘로 마지막이니까 먼저 치시라구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예우입니다'. 라구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프로 박! 이번 기회가 오늘 먼저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라!?" 라고 하더군요.

 

 

원 세상에 ! 내가 할 소리를 할아버지께서 하시네... 전 속으로 은근히 화가 치밀었죠.솔직히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얄미웠습니다. 어찌 보면 전 할아버지의 심리전에 벌써부터 휘말리고 있었던 겁니다.어쨌든 저의 간곡한 부탁(?)으로 태국인 어르신의 티샷으로 경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첫 홀은 파4홀. 보기 좋게 둘 다 '파'를 잡았죠. 두 번째 홀도, 세 번째 홀도... 계속된 파의 행진. 진짜 계속적으로 할아버지께서 먼저 치시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5번 홀, 드디어 제가 '버디'를 잡았죠. 그런데, 할아버지도 버디를 잡는 것 아니겠어요.

 

 

8번 홀에서는 제가 그린 밖에서의 런닝 어프러치를 마치 타이거 우즈의 그것과 같이 성공시킨 후, 전 씨~~~익 쪼개고 있었습니다.ㅋㅋㅋ. 참고로, 박 프로 최고의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엣지 근처에서의 ‘런닝 어프러치’거든요.

 

 

'흐흐흐... 이번 홀엔 내가 이긴다.'

할아버지는 온 그린이 된 상태이긴 했지만 홀에서부터 10미터 이상 떨어진 롱 퍼트가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니 세상에나... 이 노인 양반은 10미터 퍼팅을 기적같이 성공시키는 게 아니겠어요.

사! 소사! 맙소사!!!

 

완전히 공이 홀로 빨려 들어가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겁니다. 전 정말 흔히 하는 말로 “맛이 제대로”갔습니다. 결국, 또 할아버지께서 '오너'로서 먼저 9번 홀에서 티업을 했습니다.

 

 

그 날의 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면 드라이버샷은 당연히 제가 더 멀리 치고, 그린 온도 더 많이 시켰고, 핀 옆에 붙는 샷도 더 많이 쳤습니다. 전반적인 경기력은 제가 앞선 그런 결과였죠.

 

그러나, 결과는 대참패. 저는 버디3개, 보기 6개로 75타를 쳤고, 할아버지는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로 3언더파 69타!!!!!. 오늘 그 분이 오셨나봅니다.

 

그리고, 18홀 내내 할아버지에게 '오너'를 뺏겨 진짜 단 한 홀도 먼저 티 샷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약도 오를 만큼 올랐고, 저녁 식사를 산다는 것을 떠나 제 '자존심'에 심하게 상처를 입었죠.

 

 

그 일이 있은 후 2주일 후, 이 노인 양반과 다시 붙기로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복수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결과는 저의 또 다른 '참패' 전 2오버파 74타, 얄미운(?) 어르신은 보기 없이 버디 1개로 1언더파 71타.

 

 

할아버지를 상대로 열 번 치면 여덟 번은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경기 중 보기가 없었다는 거죠. 즉, 실수의 폭이 저 보다는 훨씬 적었다는 겁니다.

 

 

비록 저 보다는 거리가 짧았지만, 그린 주변의 어프러치 샷과 퍼팅은 완전 환상이였죠.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짜 실속 있는 골프인 것이었습니다. 위험하게 플레이하지 않는, 공격적으로 할 때와 방어적으로 플레이 할 때를 너무나 잘 아는 플레이었습니다.

 

 

전 잘 치면 이븐파를 치기도 하지만, 못 치면 터무니없는 80대 중반의 스코어를 치기도 합니다. 물론 골프가 오늘 언더파를 쳤다고 내일도 언더파를 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제 경우엔 한마디로 '기복'이 너무 심했습니다. 또한, 제 자신도 언제나 플레이를 하면서는 베스트만을 추구하였습니다. 호쾌한 드라이버, 자로 잰 듯한 아이언, 핀에 착착 달라 붙어주는 어프러치 등...

 

 

그러나, 골프는 BEST를 추구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WORST를 없게 하는 게임, 즉 실수가 없는 골프, 실수가 있더라도 이 실수를 최소화하는 골프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골프는 멋은 있지만 실속은 없다는 거죠.

 

 

어쨌든 왜 많은 투어 프로들이 퍼팅, 숏 게임, 트러블 샷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지 그때 새삼스럽게 절실히 느꼈습니다. 거의 70% 정도를 숏 게임에 할애하는 이유를요.

 

 

샷에서의 미스 샷은 언제 누구든지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미스 샷을 어떻게 잘 세이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수를 하게 되면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실수의 범위를 좁게 만드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그 때의 일을 다시 생각해도 속이 무진장 쓰립니다. 안되겠어요. 저 연습하러 갑니다.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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