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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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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퍼터 하나 거리, 약 85cm 거리에서 퍼팅을 몇 개나 연속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전에 마음먹고 집에서 이 연습을 해 봤습니다.

인심 좋은 동반자에게 잘만하면 OK도 받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실패하면 또 하고, 실패하면 또 하고...결국 111개를 연속으로 성공했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ㅋㅋㅋ

 

 

그럼. 그 이후에 스코어가 좋아졌을까요?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짧은 퍼팅이 짧은 퍼팅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이 홀 주변에만 붙으면, '나 이거 100개 연속으로 성공한 적도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보기 퍼팅이건, 파 퍼팅이건, 버디 퍼팅이건 상관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퍼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죠. 그렇게 되니 끝내야 하는 순간에 끝낼 수 있게 되더군요.

 

그래서 스코어가 좋아졌을까?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라운드를 하면 버디 두 세 개 정도는 꼭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머지않아 버디가 다시 사라져버렸고, 점수는 원상태로 되돌아왔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무리 퍼팅 실력이 나빠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늘 짧은 거리에서의 퍼팅 연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버디의 기회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자, 나도 모르게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덤비기 시작했습니다. 세컨 샷을 하면서 그린의 안전한 지역이 아니라 벙커 옆에 바짝 붙어 있는 핀을 직접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러프에 빠진 상황에서 반드시 그린으로 가겠다고 롱 아이언을 꺼내듭니다. 파 5홀에서 세컨 샷을 최대한 그린에 붙이고자 3번 우드 이외에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짧은 파 4홀에서 드라이버 한방으로 물을 가로질러 그린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고 시도합니다. 돌아온 것은 기회가 아니라 수 없이 많은 벌타였습니다.

 

기회를 억지로 만들겠다고 덤비면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무리수를 두면 결국은 실수 하게 마련입니다.

실수를 만회하느라 이런 저런 고생을 하다 보면 화가 납니다.

그래서 평정심을 잃게 되면 이제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버디를 잡기 위해서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기회를 참고 기다리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수 없이 많은 벌타 이후에 겨우 깨닫게 된 교훈입니다.

 

요즘은 1번 홀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오늘은 언제쯤 찾아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한 홀, 한 홀 경기를 해 나갑니다.

첫 홀에서 보기를 해도 아직 17홀이 남았다고 위로 합니다.

결국 버디 없이 경기를 마쳐도 화내지 않습니다. 다음 라운드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린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골프에서 초특급 고수가 된다는 것, 그것은 스윙을 가다듬는 것 만큼 마음을 가다듬는 수련도 함께 해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골프를 통해서 배운 기다림의 여유, 비단 골프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요? 

 

 

현재 LPGA 세계 랭킹 1위인 박인비 프로는 대만의 청야니 선수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청야니 선수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엄청난 장벽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샷 하나 하나에 집중해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청야니 선수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높게만 느껴지단 청야니 선수가 박인비 프로를 “넘사벽”으로 인정했습니다.

 

 

박인비 프로는 한 동안 엄청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2008년 US 여자 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했을 때 골프 방송에 나오는 유명 레슨 프로들이 죄다 자기가 가르쳤다고 광고를 하고 다녔지요. 그리고, 그녀가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는 하나같이 자기한테 배운 것 아니라고 발뺌을 했던 웃지 못 할 일이 실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박인비 프로가 절정의 샷 감각을 보여주며 세계 랭킹 1위에 오르자 또 다시 자신이 스윙 교정해줬다라고 골프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유명 프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어째든........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현재 약혼자인 코치를 만났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고민하면서 샷을 하나씩 교정하고 기다리면서 언젠가는 다시 재기할 거라 굳게 믿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골프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될거라 믿고 기다리면서 연습을 하면 고수가 되는 지름길을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즐거운 골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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